‘재계약’ 커쇼, LAD 13번째 영구결번 사실상 확정… ‘162G 시즌’ 우승반지 이제 딱 하나 남았다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의 ‘살아있는 전설’ 클레이튼 커쇼(36)가 팀과 동행을 17년째 이어가게 됐다. 다저스는 미래의 영구결번자를 잡으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 등 미국 매체들은 7일(한국시간) 소식통을 인용, “클레이튼 커쇼가 LA 다저스와 재계약에 합의했다”면서 “이로써 커쇼는 17시즌 동안 ‘다저스맨’으로 뛰게 됐다”고 보도했다. 2025시즌에는 선수가 행사할 수 있는 옵션이 계약사항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커쇼가 계약 연장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당초 다저스와 커쇼의 재계약 여부는 불투명했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왼쪽 어깨 수술을 받은 그는 올해 여름에나 복귀가 가능하다. 36세의 나이에 위험성이 큰 어깨를 다쳤다는 점에서 예상보다 늦게 복귀할 가능성도 높다. 여기에 지난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팀이 3전 전패로 탈락한 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이를 부채질했다.
또한 커쇼는 꾸준히 고향(텍사스주 댈러스)팀인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뛰어난 성적과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2022년과 2023년 연달아 단기계약을 맺었던 것도 이같은 이유라는 분석이었다. 2022시즌을 앞두고도 텍사스행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왔으나, 메이저리그의 직장폐쇄가 풀린 3월 다저스와 1년 재계약을 맺은 바 있다. LA 타임스는 “커쇼는 가족들과 함께 고향에서 커리어를 마감하겠다고 오래 전부터 공언했다. 텍사스에 합류하는 건 이를 위한 좋은 기회다”고 말했다. 커쇼 본인도 2022년 말 MLB.com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내가 뛸 수 있는 팀은 두 팀뿐이다. 이건 비밀이 아니다”며 향후 다저스와 텍사스 유니폼만 입을 뜻을 밝혔다.
이에 앤드류 프리드먼 다저스 야구 운영 부문 사장은 지난해 11월 “커쇼와 가족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커쇼가 다저스에서 커리어를 마치기를 바란다”며 재계약에 대한 여지를 남겨뒀다.
이렇듯 다저스는 선수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남기면서도 동행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스포츠매체 디 애슬레틱의 칼럼니스트 짐 보든은 지난달 “다저스는 커쇼의 컴백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팀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텍사스로 이적하는 것보다는 다저스 잔류가 커쇼에게는 더 쉬울 전망이다”는 말도 덧붙였다. MLB.com의 LA 다저스 담당기자인 후안 토리비오는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브랜든 고메스 다저스 단장이 커쇼와 재계약 가능성에 대해 ‘물론이다. 계속 커쇼와 연락하며 협상을 진행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2023시즌 종료 후 다저스와 재계약, 텍사스 이적, 은퇴 3가지 기로 앞에 섰던 커쇼는 일단 선수생활 마감이라는 선택지는 지웠다. 그는 지난해 말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아직 결정된 건 없다. 아내와 상의하고 있다”면서도 “내면에서는 이전처럼 끝내고 싶지 않아 한다. 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싶다”며 복귀 가능성을 암시했다.
텍사스 이적 역시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인 텍사스는 우승 주역 중 하나인 좌완 조던 몽고메리(32)와 아직 계약을 맺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맥스 슈어저(40)와 제이콥 디그롬(36)이라는, 커쇼만큼이나 빅네임인 투수들이 2명이나 있다. 이들도 커쇼처럼 올 여름에나 돌아올 예정이어서 시너지가 나기 어려웠다. 이에 텍사스가 커쇼에 관심을 보인다는 움직임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커쇼는 다저스와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쪽을 선택하며 ‘리빙 레전드’로 남게 됐다. 이로써 그는 큰 이변 없이 성공적인 복귀를 한다면 그의 등번호 22번은 영구결번으로 남게될 전망이다. 1884년 리그에 진입해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다저스는 12명의 영구결번자가 있다. 지난 1972년 6월 재키 로빈슨(42번)과 로이 캄파넬라(39번), 샌디 쿠팩스(32번) 등 3명이 함께 영구결번자로 지정된 것이 최초였다. 로빈슨은 1947년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면서 다저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과 MVP, 신인왕 등을 차지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캄파넬라 역시 최초의 흑인 포수로 뛰며 1951년과 1953년, 1955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다. 쿠팩스는 12년이라는 짧은 기간만 뛰면서도 4번의 우승반지와 3차례 사이영상 수상 등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 최고의 좌완투수였다.
이후 다저스는 월터 앨스턴(24번, 1977년), 짐 길리엄(19번, 1978년), 듀크 스나이더(4번, 1980년) 등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이후 1984년 피 위 리즈(1번)와 돈 드라이스데일(53번) 이후 한동안 나오지 않았던 영구결번자는 1997년 토미 라소다 감독의 등번호 2번이 지정되면서 다시 나왔다. 선수 시절 다저스에서 단 2년 동안 고작 8경기에 등판했던 그는 1976년 다저스 지휘봉을 잡은 후 1996년 건강이상으로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무려 21시즌 동안 1599승 1439패 승률 0.526의 기록을 남겼다. 또한 박찬호(51)의 메이저리그 첫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라소다에 이어 2023년까지 다저스 통산 최다승(233승)의 주인공인 돈 서튼(20번)이 이듬해인 1998년 영구결번자가 됐다. 이후 24년 동안 나오지 않았던 다저스의 영구결번은 팀에서 2번의 우승(1955, 1959년)을 차지했던 길 호지스의 14번이 사망 50주기인 2022년 지정됐고, 지난해 2월에는 멕시코 역사상 최고의 투수이자 1981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좌완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34번)가 다저스를 떠난 후 무려 33년 만에 영구결번자가 됐다.
커쇼의 커리어 역시 이들과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저스 역사상 최고 투수 반열에 올려야 할 정도다. 커쇼는 다저스에서만 16시즌을 뛰며 425경기에서 2712⅔이닝을 소화, 210승 92패 2944탈삼진 평균자책점 2.48의 기록을 남겼다. 다저스의 유구한 팀 역사 속에서 투수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 1위(77.1,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다승 2위, 탈삼진 1위, 이닝 5위, 선발등판 3위(422경기) 등 대부분의 주요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만약 올 시즌 복귀 후 56개의 삼진만 더 잡는다면 커쇼는 통산 3000탈삼진 고지를 밟게 된다. 그보다 탈삼진이 조금 더 많은(2979개) 잭 그레인키(40) 다음으로 역대 21번째 3000탈삼진 선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해까지 통산 3000개의 삼진을 잡은 선수 중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한 선수는 단 5명이었다. 이중에서 맥스 슈어저(3367탈삼진)와 저스틴 벌랜더(3342탈삼진)는 현역 선수고, CC 사바시아(3093탈삼진)는 2019시즌을 끝으로 은퇴해 내년에야 첫 후보 자격을 얻는다. 로저 클레멘스(4672탈삼진)는 금지약물 사용 혐의, 커트 실링(3116탈삼진)은 은퇴 후 여러 설화(舌禍)를 일으키며 탈락했다. 사실상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한 팀에서만 3000탈삼진을 기록하는 건 역대 5번째가 된다. 앞서 월터 존슨(워싱턴 세네터스, 3509탈삼진), 밥 깁슨(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3117탈삼진), 스티브 칼튼(필라델피아 필리스, 3031탈삼진), 존 스몰츠(애틀랜타 브레이브스, 3011탈삼진)가 그 주인공이었다. 여러모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울 수 있다.
2006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다저스에 1라운드 7순위로 지명받은 커쇼는 짧은 마이너리그 생활 후 2008년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첫 시즌부터 22경기(21선발)에 등판해 5승 5패 평균자책점 4.26의 성적을 거두며 가능성을 보여준 커쇼는 2009년 17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첫 3시즌 동안 9이닝당 볼넷이 3~4개로 다소 불안한 제구를 보였던 커쇼는 2011년 드디어 만개에 성공했다. 그해 9이닝당 2.1볼넷을 기록한 그는 21승 5패 평균자책점 2.28 248탈삼진으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에 올라 생애 첫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이후 5년은 그야말로 커쇼의 최전성기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그는 159경기에 선발로 나와 1128이닝을 던지며 88승 33패 1249탈삼진 242볼넷 평균자책점 2.11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 1위 4연패(2011~2014년), 다승 1위 2번(2011, 2014년), 탈삼진 1위 3번(2011, 2013, 2015년) 등 리그를 지배했다.
특히 2013년과 2014년은 투·타를 통틀어서도 내셔널리그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로 등극했다. 2013시즌에는 33경기에서 16승 7패 평균자책점 1.83을 기록하며 사이영상 탈환과 함께 MVP 투표에서도 처음으로 10위권 안에 들었다(7위). 이어 2014년에는 200이닝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198⅓이닝) 21승 3패(승률 0.875) 239탈삼진 평균자책점 1.77을 기록하며 사이영 2연패와 동시에 MVP에 등극했다. 내셔널리그에서 투수가 MVP를 수상한 건 1968년 밥 깁슨(당시 세인트루이스) 이후 무려 44년 만이었다.
커쇼는 2015년에도 232⅔이닝을 소화하며 처음으로 리그 이닝 1위에 올라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듬해 허리 부상으로 2개월 넘게 결장하며 149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이후 커쇼는 ‘유리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닝 소화력이 줄어들었다. 2016년부터 8시즌 동안 규정이닝(162이닝)을 채운 시즌이 단 두 번(2017, 2019년) 밖에 없었다. 지난해 6월 어깨 통증을 포함해 커쇼는 최근 3년 동안 무려 6번이나 부상자 명단(IL)에 등재됐다.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인한 구위 저하에도 불구하고 24경기 131⅔이닝 동안 13승 5패 평균자책점 2.46의 성적으로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구위 문제가 끝내 발목을 잡으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⅓이닝(35구) 동안 6피안타(1홈런) 1볼넷 6실점의 충격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주며 고개를 숙였다. ESPN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포스트시즌에서 선발 투수가 5안타와 5실점을 각각 허용한 뒤 첫 아웃카운트를 잡은 건 커쇼가 최초였다. 커쇼가 1차전(2-11 다저스 패배)부터 무너진 다저스는 결국 2차전과 3차전을 허무하게 내주며 스윕패로 탈락의 쓴맛을 봤다.
이렇듯 아쉬운 시즌 마무리를 했지만, 커쇼는 팀에서 여전히 중요한 존재다. 지난해 다저스는 커쇼 본인 외에도 워커 뷸러, 더스틴 메이, 토니 곤솔린, 훌리오 우리아스 등 선발진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일이 잦았다. 뷸러는 올해도 개막 로스터 포함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20승을 올렸던 우리아스가 지난 시즌 말 데이트 폭력 사건에 연루돼 결국 팀과 재계약을 맺지 못했다.
최소 3개월을 날려야 하는 커쇼와 재계약을 맺은 것도 그만한 선발이 다저스에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다저스의 올해 선발진은 한마디로 ‘외화내빈'(겉은 화려하나 속은 빈약하다는 뜻)이다. 다저스는 이번 겨울 4명의 선발 자원을 데려왔다. 오타니 쇼헤이(30)와 10년 7억 달러(약 9369억 원)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규모의 계약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NPB 최고의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26)를 역대 FA 투수 최고액인 12년 3억 2500만 달러(약 4350억 원)에 붙잡았다. 여기에 타일러 글래스노우(31)와 제임스 팩스턴(36)까지 데려왔다.